출처: 블록미디어
경기 판교에 거주하는 56세 A씨는 3년 전 암 3기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오던 중 병원 앞에 있는 은행 출장소를 통해 전재산을 맡겼다. 내집 마련을 위해 모아둔 돈이었다. 그가 가입한 상품은 직원이 ‘예금이나 다를 바 없다’고 설명한 ELS였다. 직원의 말과 달리 원금 절반의 손실이 난 현재, 그는 “어떻게 치료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눌했던 사람에게 그런 상품을 가입시킬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75세 B씨는 40년 넘게 거래한 은행에서 평생 모은 돈 6억6000만원을 ELS에 투자했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는 은행 직원의 설명을 믿었다, 자식들에게도 ELS를 소개해 함께 가입한 그는 지금 가족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처지가 됐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급락으로 원금 손실을 입은 ELS 가입자들이 은행과 금융당국을 상대로 각각 대규모 소송전과 공익 감사에 돌입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한 ELS 투자자는 로집사 법률사무소를 통해 지난달 30일 판매 은행을 상대로 한 ‘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 분쟁조정 신청을 금감원에 제기했다. 이는 이번 H지수 ELS 손실에 따른 첫 조정 신청이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가입 금액과 동일한 2억7900만원, 다른 투자자들도 잇달아 손해배상 청구를 예고돼 수십억원대 소송전이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ELS 피해자 모임은 이달 중 공익 감사를 청구할 예정이다.
지난달 30일 피해자 모임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진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2019년 은행의 ELS 판매를 허용하면서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금융감독이 상시 감독하겠다고 했는데, 이 모든 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예정된 참사”라며 “피해 배상은 물론 금융당국의 책임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입자들은 은행의 ELS 판매 과정에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위반 소지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이 ELS 가입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는 실제 상품 특성과는 차이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 손실은 없다”는 표현부터 “6개월 안에 혹시 찾지 못하더라도 1년 안에는 반드시 찾는다”, “금리가 좀 더 높은 사실상 예금 상품” 등이 있다. ELS는 원금 전액 손실이 가능한 고위험 상품이며 대부분 2년, 3년 만기 상품이다. 또 많은 가입자들은 과거 손실 또는 원금 손실 구간(녹인 구간)에 들어섰던 사례는 듣지 못했다고도 말한다.
주식 투자도 한번 안해본 ‘안정추구형’임에도 직원의 지시대로 체크해 ‘공격투자형’이 된 사례에 대한 제보도 빗발친다. ELS는 1~6등급으로 나뉘는 위험도 기준에서 ‘1등급’, 가장 위험한 상품으로 분류돼 공격투자형이 아니면 가입이 제한된다. 많은 가입자들은 “예적금 들러 갔다 직원이 먼저 ELS에 가입하는 게 어떻겠냐 권유해 가입하게 됐다”고도 했다.
금소법에 따르면 판매사는 금융소비자 특성을 파악해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 또 고객이 상품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이를 녹취 등으로 기록해둘 의무가 있다.
길성주 ELS 피해자 모임 대표는 “피해자들은 아무 근거 없이 손실을 배상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법과 규정에 의거해 금융소비자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하는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초래한 금융권에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묻고 관리 감독을 강화해 다시 동일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 조치해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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