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블록미디어
“금리·대선·물가 상관 말라…엔비디아 계속 오를지 아무도 몰라…반도체는 경쟁 극심한 산업”
이처럼 ‘비싼 주식’이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우수한 수익률을 내는 것을 ‘좋은 주식을 저렴하게 사서 비싸게 파는’ 가치투자자는 어떻게 정당화해야 할까.
애덤 시셀 미국 그래비티캐피털자산운용 대표는 저서 ‘돈은 빅테크로 흐른다'(2023)를 통해 테크주는 고평가 상태라는 전통적인 가치투자의 관점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가치투자는 테크기업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수리적 도구를 갖추지 못했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주가수익비율(PER)은 테크기업이 창출한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고안해 낸 ‘어닝파워 PER’, ‘BMP(비즈니스·경영진·가격) 템플릿’ 같은 도구로 테크기업을 평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책은 월가에서 가치투자 원칙을 훼손했다는 논란을 일으킴과 동시에 가치투자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한국투자신탁운용 기자간담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시셀 대표는 12일 여의도에서 취재진과 만나 빅테크 투자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여전히 유지했다.
그는 “12살짜리 꼬마에게 ‘향후 10∼20년간 제조업과 소매업, 헬스케어, 테크(기술) 중 경제적 가치는 어디에서 나올까’라고 물어봐도 기술이라고 대답할 것”이라며 “어떤 종목은 부침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돈은 빅테크로 흐른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선부터 지정학적 갈등까지 국내외 정치 이슈와 거시경제 여건(매크로) 등이 이 같은 돈의 흐름을 바꾸진 못할 거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금리는 오르고 내리기도 한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당선되고 물러난다. 물가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이런 것들은 비즈니스와 전혀 상관이 없다. 주식은 비즈니스고 비즈니스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갈등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해선 “(중국계) 틱톡도, (대만) TSMC도 리스크가 있다”면서도 “지정학적 리스크는 주도권 다툼 과정에서 비즈니스를 확장하기 위해 마주할 수밖에 없는 리스크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좋기도 하다. 이런 리스크들이 꼭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셀 대표는 특히 지난 10여년 초저금리 시대를 통과하며 시장에 풀려있던 막대한 유동성이 빅테크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설명은 틀렸다며 “(빅테크 주가는) 금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2022년 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금리가 올랐는데 그때 기술주 주가가 상당히 빠졌다. 그래서 그런 이론이 유명해졌다. 그런데 지금 기술주 주가는 어떤가. 비즈니스가 잘 되든 안 되든, 그건 금리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게 제 견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율주행이든 AI반도체든 유망 트렌드가 계속 기술주에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며 “투자자로서 해야 할 질문은 ‘내가 보유한 회사들이 트렌드에 충분히 노출돼있느냐’가 아니라 ‘기업이 기술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느냐’가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테크기업 중에서는 네이버가 흥미롭다고도 했다. 시셀 대표는 “러시아, 중국, 북한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는 구글이 독주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구글이 네이버에 밀리고 있는 사실이 놀랍다”면서 전날 네이버를 방문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AI 반도체 칩을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독주가 얼마나 지속될지, 주가는 언제까지 오를지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놨다.
그는 “반도체는 2년마다 신제품을 내놔야 하는 산업이다 보니 경쟁이 너무 심하다. 엔비디아 독주가 얼마나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산업 자체가 너무나 경쟁이 심하고 살아남기 어려운 비즈니스”라며 “앤드류 그로브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의 책 제목은 ‘오직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였다. 구글의 검색엔진 시장점유율이 90%가 넘지만, 반도체 제조사처럼 새로운 칩을 2년마다 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은 없다”고 짚었다.
다만 그 역시 무조건적인 ‘기술주 예찬’은 경계했다. 그의 저서에도 등장하는 OTT(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로쿠’는 2021년 주가가 450달러에 달했지만 90% 폭락했다. 아크 인베스트먼트의 주력 상장지수펀드(ETF) 아크 노베이션(ARKK) 역시 2021년 기록한 고점에서 3분의 1로 밀렸다.
“빅테크 회사도 경제적 해자(垓字)를 갖고 있지 않다면 불행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테크기업이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운송 산업이 됐든 제조업이 됐든 해자를 갖고 있지 않으면 그 기업은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테크는 버블’이라면서 제너럴모터스(GM)에 투자하고 테슬라는 ‘숏’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모든 테크기업이 다 성공할 거고 미국에서 비선호하는 테크기업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바보입니다. 극단적인 사회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nor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