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비트코인(BTC) 상장지수펀드(ETF) 신청 소식에 가상자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전통적인 중앙화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기관투자가들의 가상자산 투자 비중이 크게 늘자 미국 월가의 상징격인 블랙록마저 가상자산 시장에 적극 뛰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도 미국 중심의 전통 금융이 흔들리는 틈을 기회로 삼아 홍콩 내 기관투자가 진입을 허용하는 등 가상자산 시장 내 기관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가상자산 시장 침체기에도 기관투자가의 관심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총 거래량 1450억 달러(약 186조 원) 가운데 기관투자가 거래량은 1240억 달러(약 159조 원)로 전체의 86%를 차지한다. 기관투자가 거래 비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76%보다 일년새 10%포인트 늘었다.
기관투자가가 가상자산에 끊임없는 관심을 드러내는 배경에는 전통 금융 시장의 위기도 한 몫 했다. 지난 3월 미국 실버게이트 은행을 시작으로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까지 이어진 연쇄 파산 사태는 전통적인 금융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을 키웠다. 크리스 버니스키 전 아크 인베스트먼트 가상자산부문 총괄은 “비트코인은 글로벌 은행들의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2009년에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한 것 역시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보여진 금융 시스템 실패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자금을 움직이는 기관투자가들의 가상자산 수요가 높아지면서 전통 금융기관들 역시 분주해졌다. 이전부터 가상자산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블랙록은 지난 15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신탁(iShares Bitcoin Trust)’ 출시 신청서를 제출했다. 명칭은 신탁이지만 상품이 나스닥에 상장되고 티커가 있다는 점에서 기능적으로는 ETF와 동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역시 블랙록에 이어 비트코인 ETF 신청을 준비 중이고 가상자산 운용사 그레이스케일 인수 또한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면서 시장의 기대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5년 1월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규제안이 발효되면 기관의 가상자산 수용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BCBS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은행의 가상자산 익스포저에 관한 건전성 규제안’은 은행의 가상자산 투자 한도 최대치를 2%로 명시해 은행이 가상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범위의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빗썸경제연구소는 BCBS 규제안이 도입될 경우 가상자산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이 2030년 기준 최대 18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중국은 홍콩을 가상자산 허브로 만들기 위한 기틀을 빠르게 다지고 있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1일부터 가상자산 허가제를 도입해 기관투자가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했다. 가상자산을 취급하는 기관의 자격요건 등 규제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홍콩을 통해 가상자산 사업을 확장하려는 전통 금융기관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DBS 등 금융기관들이 홍콩 가상자산사업자 허가 신청을 준비 중이며 중국 2대 보험사인 국영보험사(CPI)는 홍콩에서 초기 블록체인 프로젝트 투자를 위한 가상자산 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우제좡 홍콩 입법회 의원은 “웹3.0 개발에 대한 적절한 정책과 규제를 통해 더 많은 글로벌 인재와 기업을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