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블록체인투데이
정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일본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FSA)은 가상자산을 2026년까지 금융상품으로 재분류하는 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가상자산에 ‘내부자 거래’ 등 금융시장 수준의 규제를 도입하고, 투자 모집 기업 등록 의무까지 부과하는 전방위적 조치다. 가상자산을 단순 결제 수단에서 본격적인 자산군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이다.
그간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이제 ‘잃어버린 40년’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경제 침체에 허덕였다. 저성장, 저출산, 부동산·주식시장 침체는 일본 경제의 고질병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 정부는 Web3.0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 특히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국가 경제의 새로운 엔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이번 가상자산 금융상품 지정 검토를 통해 명확히 한 셈이다.
이 같은 일본의 행보는 대한민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그간 우리 정부는 디지털자산을 ‘가상자산’으로 분류하고, 자금세탁 방지나 범죄 악용 방지 등 제한적 관점에서 접근해왔다. 물론 오는 7월 시행되는 ‘디지털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처럼 디지털자산을 ‘금융 인프라’로 통합하는 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
디지털자산은 더 이상 변방의 실험이 아니다. 글로벌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선 비트코인, 블랙록·피델리티 등 전통 금융의 ETF 시장 진입, 미국 SEC의 제도화 움직임 등은 이미 시장의 성숙도를 반영하고 있다. 더군다나 Web3.0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데이터 소유권, 콘텐츠 보상, 탈중앙화 서비스 등 기존 인터넷 질서를 재편하는 거대한 흐름이다. 이 흐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디지털 경제에서 또 하나의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수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자산을 바라보는 정책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기술 혁신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간주해서는 새로운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제약하는 규제를 과감히 정비하고, 제도화와 동시에 육성에 나서야 한다. 예컨대 NFT, 디파이(DeFi), 게임 내 토큰 등 다양한 디지털 자산 형태를 포괄하는 규제 체계를 만들고, 이를 산업 진흥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또한, 일본이 가상자산을 ‘전통적 증권과는 별개로 분류’하면서도 내부자 거래 규제를 도입한 것처럼, 한국 역시 ‘신자산’에 맞는 새로운 규제 원칙이 필요하다. 기존 금융법 테두리 안에 억지로 디지털자산을 넣는 방식은 시장의 유연성과 혁신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국제 표준과 발맞춘 디지털자산 법제화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디지털 자산 허브 국가’를 목표로 글로벌 인재와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 조성도 시급하다. 싱가포르, 두바이, 홍콩 등이 이미 가상자산 친화 정책을 통해 기업 유치에 성공한 사례는 대한민국에 분명한 경고다. 가상자산 기업이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현상이 반복된다면, 미래 산업의 근간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일본은 이제 Web3.0 시대를 국가 차원의 경제 재도약 기회로 보고 있다. 이들의 도전이 성공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적어도 ‘변화를 수용하고 선도하겠다’는 태도는 분명하다. 반면 대한민국은 아직 디지털자산을 규제 대상 중심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자산을 제도권에 편입시키되, 그것이 단순히 ‘관리’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규제와 육성의 균형, 그리고 미래 산업으로서의 비전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일본이 Web3.0으로 잃어버린 40년을 되찾으려 한다면, 대한민국은 ‘잃지 않기 위한 10년’을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의 문턱 앞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규제’가 아니라 ‘기회’다.